제이슨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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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이슨 베이는 은퇴한 캐나다 출신 야구 선수로, 외야수로 활약했다. 그는 아마추어 시절 리틀 리그 월드 시리즈에 출전했으며, 2000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지명되어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베이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활약하며 2004년 내셔널 리그 신인왕을 수상했고, 2005년과 2006년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메츠, 시애틀 매리너스를 거쳐 2014년 은퇴를 발표했다. 통산 10시즌 동안 269의 타율, 211홈런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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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베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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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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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좌익수 |
타석 | 우타 |
투구 | 우투 |
출생일 | 1978년 9월 20일 () |
출생지 |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트레일 |
사망일 | (정보 없음) |
신장 | 187.96 센티미터 (6 피트 2 인치) |
체중 | 92.98 킬로그램 (205 파운드) |
국적 | 캐나다 미국 (이중국적) |
프로 경력 | |
드래프트 | 2000년 MLB 드래프트 22라운드 (전체 645위) |
선수 경력 | 샌디에고 파드리스 (2003) 피츠버그 파이리츠 (2003–2008) 보스턴 레드삭스 (2008–2009) 뉴욕 메츠 (2010–2012) 시애틀 매리너스 (2013) |
첫 출장 (MLB) | 2003년 5월 23일 |
마지막 출장 (MLB) | 2013년 7월 26일 |
수상 | |
올스타 | 3회 (2005, 2006, 2009) |
신인왕 | 내셔널 리그 신인왕 (2004) |
실버 슬러거 | (2009) |
기록 | |
타율 | 0.266 |
홈런 | 222 |
타점 | 754 |
대표팀 | |
국가대표 | 캐나다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6년 2009년 |
명예의 전당 | |
종류 | 캐나다 |
헌액일 | 2019년 |
색상 | #EC1C40 |
링크 | 캐나다 야구 명예의 전당 |
2. 아마추어 경력
어린 시절 야구에서 베이의 트레일 리틀 리그 팀은 1990년 리틀 리그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베이는 코르달렌의 노스 아이다호 칼리지와 스포캔의 곤자가 대학교에 재학하며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대학 야구를 했다.[1] 1999년에는 케이프 코드 야구 리그의 채텀 애슬레틱스에서 뛰었다.[2][3]
2000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22라운드에서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지명되어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42] 마이너 리그를 거쳐 2002년 뉴욕 메츠를 잠시 거친 뒤, 같은 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되었다.[4]
3. 프로 경력
2003년 5월 23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으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으나, 데뷔 직후 손목 부상으로 이탈했다.[43] 같은 해 8월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트레이드되었다.[6] 어깨 수술로 2004 시즌 초반을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활약을 펼쳐 캐나다 선수 최초로 내셔널 리그 신인상을 수상했으며,[7] 캐나다 최고 야구 선수에게 주어지는 팁 오닐 상도 받았다.
이후 파이리츠의 중심 타자로 자리매김하며 2005년과 2006년 연속으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49] 특히 2005년에는 타율 .306, 32홈런, 101타점, 110득점, 21도루를 기록하며[46] 두 번째 팁 오닐 상을 수상했고, 파이리츠와 4년 1825만달러의 연장 계약을 맺었다.[8][46][47] 2007년에는 무릎 부상으로 다소 부진했다.[10][51]
2008년 시즌 중 트레이드 마감을 앞두고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하여[14] 팀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2009년에는 레드삭스 소속으로 개인 통산 최고인 36홈런과 119타점을 기록하며 세 번째 올스타로 선정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2009 시즌 종료 후 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얻어 뉴욕 메츠와 4년 6600만달러 계약을 맺었다.[17][18] 하지만 메츠에서는 잦은 부상, 특히 뇌진탕 후유증으로 인해 이전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계약 기간을 1년 남기고 2012년 11월 팀을 떠났다.[28]
2013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1년 계약을 맺었으나[29] 부진 끝에 시즌 중 방출되었고,[30][31] 2014년 3월 31일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32] 2019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올랐으나, 낮은 득표율로 인해 다음 해 투표 자격을 상실했다.[33]
3. 1. 마이너 리그 경력 (2000–2002)
2000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22라운드(전체 645위)에서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지명되어[42] 계약을 맺고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엑스포스 산하 쇼트 시즌 A 팀인 버몬트 엑스포스에 배정되었다.
2001년에는 플로리다 주 리그의 엑스포스 하이 싱글 A 팀인 주피터 해머헤즈에 배정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다소 부진했으나, 5월에 미드웨스트 리그의 클린턴 럼버킹스로 옮겨진 후 첫 26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웠고, 이후 타율 0.362를 기록하며 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다. 이 해 최종 성적은 타율 0.315, 14홈런, 75타점이었다.
2002년 3월 24일, 지미 세라노와 함께 루 콜리어를 상대로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되었다. 같은 해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일에는 조쉬 레이놀즈, 바비 존스와 함께 제이슨 미들브룩, 스티브 리드를 상대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다시 트레이드되었다.[4]
3. 2. 메이저 리그 경력
캐나다 출신의 외야수 제이슨 베이는 2003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으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으나, 데뷔 직후 부상으로 잠시 전열에서 이탈했다. 같은 해 시즌 중반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트레이드되었다.
파이리츠 이적 후 잠재력을 보여주기 시작했으며, 부상으로 시즌 초반을 놓친 2004년에도 뛰어난 활약을 펼쳐 캐나다 선수 최초로 내셔널 리그 신인상을 수상했고, 캐나다 최고 야구 선수에게 주어지는 팁 오닐 상도 받았다. 이후 파이리츠의 중심 타자로 자리매김하며 2005년과 2006년 연속으로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2005년에는 다시 한번 팁 오닐 상을 수상했다. 특히 2005년에는 타율 3할-30홈런-100타점-100득점-20도루라는 뛰어난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2008년 시즌 중 트레이드 마감을 앞두고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하여 팀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2009년에는 레드삭스 소속으로 개인 통산 최고인 36홈런과 119타점을 기록하며 세 번째 올스타로 선정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2009 시즌 종료 후 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얻어 뉴욕 메츠와 4년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메츠에서는 잦은 부상, 특히 뇌진탕 후유증으로 인해 이전과 같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계약 기간을 1년 남기고 팀을 떠났다.
2013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1년 계약을 맺고 재기를 노렸으나 부진 끝에 시즌 중 방출되었고, 2014년 3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019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올랐으나, 낮은 득표율로 인해 다음 해 투표 자격을 상실했다.
3. 2. 1.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3)
2003년 5월 23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 7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장하며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 9회에 메이저 리그 첫 안타를 홈런으로 기록했다.[5] 그러나 데뷔 이틀 뒤인 5월 25일, 엘머 데센스가 던진 몸에 맞는 공에 오른쪽 손목을 맞아 골절상을 입고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43] 이후 7월 8일, 트리플 A 팀인 포틀랜드 비버스에서 복귀했다.[43]
3. 2. 2. 피츠버그 파이리츠 (2003–2008)
2003년 8월 26일, 브라이언 길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올리버 페레즈, 코리 스튜어트와 함께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이적했다.[6] 이적 후 3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87, 4홈런, 14타점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특히 9월 19일 시카고 컵스전에서는 4타수 3안타와 만루 홈런을 포함해 8타점을 올렸는데,[44] 이는 랄프 키너가 1950년 6월 25일 8타점을 기록한 이후 구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43] 시즌 종료 직후에는 오른쪽 어깨 관절순 수술을 받았다.
어깨 수술로 인해 2004년 시즌을 부상자 명단에서 시작했으며, 5월 7일에야 메이저 리그 로스터에 복귀했다. 시즌 초반 결장에도 불구하고 내셔널 리그 신인 중 최고의 공격 성적을 기록했다. 120경기에 출전해 타율 .282, 신인 최다인 26홈런과 82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장타율 (.550), 2루타 이상 장타(54개), 총 루타 (226)에서도 내셔널 리그 신인 1위를 차지했다. 그의 26홈런은 1936년 조니 리조가 세우고 1946년 랄프 키너가 달성했던 파이리츠 신인 최다 홈런 기록(23개)을 경신한 것이었다.[45] 또한 129개의 삼진을 기록하며 1993년 알 마틴이 세운 구단 신인 최다 삼진 기록(122개)도 넘어섰다.[45] 시즌 후 ''스포팅 뉴스'' 선정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으로 뽑혔는데, 이는 파이리츠 선수로는 1982년 2루수 조니 레이 이후 두 번째였으며, 캐나다 선수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7] 캐나다 최고 야구 선수에게 주어지는 팁 오닐 상도 처음으로 수상했다.
2005년에는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외야수 후보로 선발되었으나, 양 팀 로스터 선수 중 유일하게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국적 대항으로 열린 홈런 더비에는 캐나다 대표로 참가했지만 홈런을 치지 못하고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시즌 동안 파이리츠 선수로는 1982년 조니 레이 이후 처음으로 162경기 전 경기에 출전했으며,[46] 타율 .306, 32홈런, 101타점, 44개의 2루타, 110득점, 21도루를 기록했다. 이는 구단 역사상 최초이자 2005년 메이저 리그 전체에서도 유일하게 타율 3할-30홈런-40 2루타-100타점-100득점-20도루를 모두 달성한 기록이었다.[46] MVP 투표에서는 12위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파이리츠와 2006년부터 시작되는 4년 총액 1825만달러의 연장 계약을 맺었고,[8][46][47] 2년 연속으로 팁 오닐 상을 수상했다.
2006년 시즌 개막 전인 3월에는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캐나다 대표로 참가했다. 정규 시즌에서는 5월 한 달간 타율 .321, 12홈런(파이리츠 월간 홈런 기록), 35타점을 기록하며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다.[48] 특히 5월 18일부터 28일까지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10경기에서 10개의 홈런을 몰아쳤는데,[49] 이 기간 중 5월 22일부터 28일까지는 6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데일 롱, 돈 매팅리, 켄 그리피 주니어가 보유한 메이저 리그 기록에는 2경기 못 미치는 기록이었다. 구단의 적극적인 홍보와 펄 잼의 보컬 에디 베더가 피츠버그 멜론 아레나 콘서트에서 투표를 독려하는 등의[9] 노력 끝에, 베이는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내셔널 리그 외야수 중 최다 득표(리그 전체 2위, 2,635,930표)를 기록하며 앤디 반 슬라이크 이후 처음으로 팬 투표를 통해 선발된 파이리츠 선수가 되었다.[49] 77년 만에 피츠버그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4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하여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50]
2007년 시즌에는 오른쪽 무릎 부상을 안고 경기에 출전하면서 타율 .247, 21홈런, 84타점으로 다소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10][51] 시즌 종료 후 윈터 미팅에서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나 텍사스 레인저스 등으로의 트레이드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닐 헌팅턴 단장은 인디언스와 협상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실제 트레이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52]
2008년 시즌 초반에는 타격감이 좋지 않았으나 점차 회복하여 올스타 휴식기까지 타율 .282, 22홈런, 64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5월 시카고 컵스와의 홈 경기 시리즈에서는 24일과 25일 이틀 연속으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그의 개인 통산 첫 끝내기 안타들이자 파이리츠 구단 역사상 26년 만의 2경기 연속 끝내기 기록이었다.[11][53] 약 한 달 뒤에는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연장 13회초 결승 솔로 홈런을 치며 시즌 세 번째이자 통산 세 번째 끝내기 안타(원정 경기에서의 결승타)를 기록했다.[12]
3. 2. 3. 보스턴 레드삭스 (2008–2009)
2008년 7월 31일, 베이와 추후 지명 선수(조시 윌슨)[13]는 매니 라미레즈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앤디 라로시와 브라이언 모리스를 다저스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브랜든 모스와 크레이그 핸슨을 레드삭스에서 파이리츠로 보내는 3자간 트레이드를 통해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다.[14] 베이는 레드삭스 데뷔전에서 2득점을 올렸고, 특히 12회말 3루타 후 제드 로우리의 내야 안타 때 결승 득점을 기록했다. 다음 날 밤에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상대로 보스턴에서의 첫 홈런을 쳤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오리올 파크에서 멀티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베이는 2008년 레드삭스에서 .293의 타율, 9홈런, 37타점을 기록했다.
레드삭스의 2008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를 상대로 치러졌으며, 이는 베이의 선수 경력 첫 번째 플레이오프 시리즈였다. 베이는 시리즈 첫 두 경기에서 홈런을 쳤고, 시리즈를 17타수 7안타(.412), 2개의 2루타, 2홈런, 5타점으로 마쳤다. 2008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서는 득점을 기록했고, 2차전에서는 5회에 2타점 2루타와 홈런을 치며 레드삭스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레드삭스는 7차전에서 패했다.
2009년에는 올스타로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정규 시즌 동안 개인 최고 기록인 36홈런과 119타점을 기록하며 레드삭스 타선을 이끌었다. 시즌 초반에는 주자를 두고 11개의 홈런을 쳐 팀 기록을 세웠고, 이는 메이저 리그 기록에 한 개 차이로 근접한 수치였다.
2009년, 그는 ''스포팅 뉴스''가 선정한 현재 최고의 야구 선수 50인 중 41위에 이름을 올렸다.[15]
시즌 후 자유 계약을 신청했고, 레드삭스의 연봉 조정 제안을 거절했다.[16]
3. 2. 4. 뉴욕 메츠 (2010–2012)
2009년 12월 29일, 베이는 뉴욕 메츠와 4년 6600만달러 계약에 합의했으며, 5년차 베스팅 옵션도 포함되었다.[17][18] 이 계약을 성사시킨 단장 오마 미나야는 2002년 몬트리올 엑스포스 단장 시절 베이를 메츠로 트레이드한 인연이 있었다. 2010년 1월 5일, 미나야와 구단주 제프 윌폰은 시티 필드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베이에게 메츠 유니폼과 등번호 44번을 수여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보상으로 2010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39번째(앤서니 라나우도)와 57번째(브랜든 워크먼) 지명권을 받았다.[19]
2010년 4월 27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더블헤더 첫 경기에서 베이는 4회말 뉴욕 메츠 소속 첫 홈런을 기록하며 팀에 2-0 리드를 안겼다. 메츠는 이 경기를 4-0으로 승리했고, 이어진 두 번째 경기도 10-5로 승리했다.
메츠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2010년, 베이는 95경기 출전에 그쳤다. 다저스와의 경기 도중 펜스에 부딪혀 머리를 다쳐 뇌진탕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해당 시즌을 타율 .259, 6홈런(전년도 36개), 47타점, 48득점으로 마감했다.
2011 시즌은 갈비뼈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서 시작했으며,[20] 4월 21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복귀했다. 이날 경기(메츠 9-1 승리) 8회 타석에서 베이는 평범한 플라이볼을 쳤으나, 상대 우익수 헌터 펜스가 공을 놓치는 실책을 범해 베이와 주자 데이비드 라이트가 모두 득점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되었다. 베이는 앞선 4회에도 2루타를 치고 득점했다.[21][22] 2011년 6월 28일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투수 다니엘 슐레트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이는 2009년 8월 1일 앤젤 파간 이후 메츠 소속 선수가 기록한 첫 만루 홈런이었다.[23] 8월 8일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개인 통산 200번째 홈런을 달성하며, 래리 워커와 맷 스테어스에 이어 이 기록에 도달한 세 번째 캐나다 출신 메이저 리그 선수가 되었다.[24] 베이는 9월에 또 다른 만루 홈런을 추가하며 개인 통산 다섯 번째 내셔널 리그 주간 선수상을 수상했다.[25]
베이는 2012 시즌을 부진하게 시작했다. 스프링 트레이닝 동안 홈런이나 타점을 기록하지 못했고, 정규 시즌 개막 후인 4월 23일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 갈비뼈 골절상을 입어 어려움을 겪었다.[26] 6월 8일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했지만, 3타수 무안타 1삼진을 기록했다. 복귀 후 6월 12일까지 16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다가 6월 13일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1루타를 치며 안타를 기록했다.[27] 그러나 6월 15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홈 경기에서 좌익수로 출전한 베이는 제이 브루스의 플라이볼을 잡으려다 외야 펜스에 충돌하여 뇌진탕을 당했고, 2회에 교체되었다. 이 타구는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으로 기록되었다. 베이는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7월 17일 워싱턴 내셔널스를 상대로 복귀했다. 9월 2일에는 마이애미 말린스 투수 마크 뷰얼레를 상대로 1회에 만루 홈런을 쳐 팀의 5-2 승리에 기여했다. 베이는 9월 22일에도 뷰얼레를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4-3 승리를 도왔다. 베이는 2012 시즌을 타율 .165, 8홈런, 20타점으로 마감했다.
2012년 11월 7일, 메츠 구단과 베이는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1년 일찍 종료하기로 결정했고, 베이는 자유 계약 선수 신분이 되었다.[28]
3. 2. 5. 시애틀 매리너스 (2013)
2012년 12월 8일, 시애틀 매리너스는 베이와 1년 100만달러 계약을 맺었다.[29] 베이는 매리너스에서 6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04, 11홈런, 20타점을 기록한 후 2013년 7월 29일에 지명 할당되었다.[30] 베이는 8월 6일에 방출되었다.[31]
2014년 3월 31일, 베이는 공식적으로 프로 야구 은퇴를 발표했다.[32]
베이는 2019년에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자격이 있었지만, 득표율 5% 미만을 받아 2020년 투표 자격을 잃었다.[33]
4. 국가대표 경력
- 1990년 리틀 리그 월드 시리즈에 캐나다 대표로 참가했다.
- 2006년과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캐나다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5. 수상 경력
- 2004년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상
- ''더 스포팅 뉴스'' 내셔널 리그 올해의 신인상 (2004)
- 내셔널 리그 이달의 신인상 3회 (2004년 6월, 7월, 9월)
- 팁 오닐 상 3회 (2004, 2005, 2009) – 매 시즌 최고의 캐나다 야구 선수에게 수여
- 내셔널 리그 올스타 2회 (2005, 2006)
- MLB 이달의 선수 (2006년 5월)
- 척 태너 상 (2008): "메이저 리그 작가들에게 일상적인 책임을 수행하는 데 최고의 도움을 주기 위한 프로 정신, 협력, 가용성"을 기림[37]
-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2009)
-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실버 슬러거 (2009)
6. 개인 생활
베이와 그의 아내 크리스틴은 세 자녀를 두고 있다.[34]
베이의 여동생 로렌 베이-레굴라는 프로 소프트볼 선수로, 캐나다 대표팀 소속으로 2004년 올림픽과 2008년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는 트레일에서 태어난 전 NHL 센터 숀 호르코프와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자신의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섰던 그레이디 시즈모어와도 절친한 사이다.
베이는 보스턴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열렬한 보스턴 레드삭스 팬이었으며, 어렸을 때 입을 레드삭스 유아용 바디수트를 사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 바디수트가 레드삭스의 위대한 선수 짐 라이스와 칼 야스트렘스키의 어린 시절 TV 방 포스터 두 개와 함께 부모님 댁 지하실에 아직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35]
2009년 7월 2일, 베이는 보스턴의 패뉴얼 홀에서 열린 행사를 통해 미국 시민이 되었다.[36]
7. 출신 학교
베이는 코르달렌의 노스 아이다호 칼리지와 스포캔의 곤자가 대학교에 재학하며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대학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1]
8. 통산 성적
- 캐나다 출신 선수 중 통산 홈런 역대 5위를 기록했다. 이는 래리 워커(383개), 조이 보토(356개), 매트 스테어스(265개), 저스틴 모노(247개) 다음이다.
- 주요 통산 기록 순위는 다음과 같다.
- * 통산 슬러깅률: 4위 (.515)
- * 통산 출루율+슬러깅률(OPS): 6위 (.890)
- * 통산 홈런: 9위 (139개)
- * 통산 삼진: 13위 (682개)
- * 통산 출루율: 15위 (.375)
- * 통산 희생 플라이: 17위 (34개)
- * 통산 몸에 맞는 공: 20위 (35개)
8. 1. 연도별 타격 성적
기석
수
점
타
루
타
루
타
런
타
점
루
실패
타
플라이
넷
사구
구
진
살
타
율
루
율
타
율
P
S